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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망원동의 동명이 유래된 망원정은 망원동 137, 207-1번지 일대인 양화나루 서쪽에 있었는데 태조의 아들이며 태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인데 1424년에 건립되었다.
1425년 왕이 농사형편을 살피러 이곳에 거동했다가 새 정자에 올랐을 때 때마침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므로 왕이 매우 기뻐하며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熹雨亭)이라 하였다. 효령대군은 왕의 이같은 행차와 명명에 깊이 감사하며 당시 서도(書道)로 이름높던 부제학 신색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고 시문의 대가인 춘정 변계량(卞季良)에게 기문(記文)을 짓게 하였다. 이때 지은 변계량의 기문은 "정자의 제도가 사치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은데 백악산이 뒤에서 굽어보고 한강이 앞에서 흐르며 서남쪽의 여러 산은 넓고 멀어서 아득하여 구름과 하늘과 연기가 물밖으로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다. 굽어보면 고기·새우도 역력하게 셀 수 있는데 바람실은 돛과 모래위의 새들은 바로 정자 아래서 오가며 천여그루의 소나무는 푸르고 울창하여 술상위에서 아른거린다."하였다.
희우정은 강변과 가깝게 있는 누각 형식의 건물로 둘레에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주위에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했는데 왕이 이곳에 기거했던 1445년에는 지중추사 이장(李藏)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주화질여포를 발사하여 실전을 방불케하는 훈련을 하여 세자인 문종과 대군 등이 희우정 서쪽 봉우리에 올라 관람하였다.
1484년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소유로 바뀌게 되자 월산대군은 정자를 보수하여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망원정(望遠亭)으로 하였다. 성종은 세종때의 예에 따라 매년 봄 가을 이곳에 납시어 농사의 정도를 살피고 수전(水戰)연습을 관람하였으며 문인명사들과 시주(試酒)를 즐기기도 하였으나 형인 월산대군이 죽은 후에는 정자를 찾지 않았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1506년 연산군은 창의문 밖 탕춘대에 호화찬란한 탕춘정(蕩春亭)을 짓게 하고 양화도에서 탕춘대성이 있는 장의동 어구에 이르는 거리에 수로를 파서 한강물을 끌어 들여 탕춘정 앞으로 흐르게 할 것을 명하였다.
그런가하면 동년 7월에는 한강가 망원정을 크게 확장할 것을 명하였는데 초가지붕에 건물은 천여명이 앉을 만큼 크게 짓되 정자위에서 바라다보이는 어떠한 건물도 모두 철거하도록 하였다. 정자의 이름도 수려정(秀麗亭)으로 고치게 하였다.
그러나 동년 9월 중종반정으로 모든 공사가 중지되고 철거됨에 따라 망원정을 본래의 경치좋은 모습으로 명사들이 청유(淸遊)를 즐기는 명소로 바뀌었다. 경기가 좋은 이곳은 주로 명나라 사신 접대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잠두(蠶頭)와도 가까워 잠두로 가는 길에 이곳으로 들리는 사람도 많았다. 복원되기 전 희우정의 그림은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는데 강안 절벽 암반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이다. 마루 둘레는 난간을 돌렸고 팔작지붕인데 1925년 을축년 홍수로 소실된 것을 1991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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