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클래스넷   그룹웨어   MAIL   SITEMAP ENGLISH   中國語   대학원   세종캠퍼스
 
 
HOME > 대학생활안내 > 근교주요명소 > 밤섬
 

밤섬
밤섬은 해방전까지 율도(栗島)정으로 서강 서부동회에 속했었으나 1968년 2월10일 한강개발사업에 따라 폭파됨으로써 창전동에 속하게 되었다. 밤섬이란 이름은 섬이 밤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동국여지비교(東國輿地備巧)」에는 율주(栗州) 또는 가산(駕山)이라 했으며 길이가 7리(里), 서울의 10리되는 곳, 마포남쪽에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 「한국지명총란」에는 "순조때까지는 뽕나무를 심었고 고려때에는 죄인을 귀양보내던 섬으로 이용되었으며 도선장으로 백사장을 건너 인천으로 가는 간로(間路)가 된다」고 설명되고 있다. 이곳에는 부군신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어업과 도선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5백여년전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이곳에 정착, 조선업에 종사하기도 했었다. 이고 주민들은 馬씨, 判씨, 石씨, 宣씨등 희성의 소유자들로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며 거의 원시공동사회체제속에서 생활을 영위했다 「대동지지」에 "밤섬은 서강 남쪽에 있는 한 섬인데 섬전체가 수리(里)의 모래로 되어있으며 주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 편이다"라고 하였으며 「한경지략」에도 "마포남쪽에 있는 밤섬은 약초모종을 내고 뽕나무를 재배하는 곳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조선후기 순조연간까지도 이곳에는 약초밭과 뽕나무밭이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용재총화」권 10에 "밤섬에는 많은 뽕나무를 심어서 해마다 누에철이 되면 잎을 따서 누에를 쳤다. 옛날에 서울장안에 서너 대감집에서만 누에를 쳤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감집뿐 아니라 가난한 집에서도 누에를 치지 않는 집이 없기 때문에 뽕잎값이 뛰어오르고 비싸서 뽕나무를 심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하였다. 서호팔경(西湖八景)의 하나였던 「율도명사(栗島明沙)」의 명물인 밤섬의 강모래 벌판이 사라지게 된 이유로는 서울시가 여의도를 1968년 개발하면서 한강하구를 넓혀 물길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돌산으로 된 밤섬을 폭파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하였으며 지금은 사시사철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개인정보 처리방침     예결산공고     대학정보공시    대학자체평가
Copyrightⓒ2010 Hongik University.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94(상수동) 홍익대학교
대표전화: 02-320-1114. 우. 04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