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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흥창은 창전동 402번지 일대에 위치하였으며 경기와 삼남지방에서 바친 공미(貢米)를 쌓아 두었다가 여러 관리들의 녹봉을 관장한 관아인데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조선 건축초에 설치한 것이었다.
「육전조례(六典條例)」호조전에 보면 매월 20일 후에 문관은 이조에서 무관은 병조에서 각각 봉급조서를 작성하여 호조로 통고해 오는데 호조에서는 봉급조서 명단을 살핀 후 감봉 및 물품관리관의 귀책 사유의 해제여부를 고찰하여 광흥창에 통지한 다음 날짜를 배정하여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광흥창의 관원으로는 정4품의 수(守), 종6품의 주부(主簿), 종8품의 봉사(奉事), 정9품의 부봉사(副奉事) 각 1명씩을 두었다가 후에 종5품의 영(令), 종7품의 직장(直長) 1명씩을 각각 증원하고 부봉사를 감원하였다.
대창(大倉)이라고도 부르는 광흥창 주변에는 녹봉관리를 위한 광흥창관리들과 호조의 파견관리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도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못 복잡한 곳이었다. 따라서 광흥창 앞을 흐르는 창내(倉川) 왼쪽에는 벼슬아치 들이, 오른쪽에는 일반 평민이하가 살았기 때문에 이들 양반들을 일컬어 서강양반이라 하였다. 물론 서강양반은 도성 안에서야 기를 펼 수 없는 하급관리에 불과했지만 도성 밖 강가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갓쓰고, 도포입은 것만해도 대단한 행세를 하는 것이어서 '창천 동쪽 사람들은 서강양반 종노릇'이라는 말도 생겨나왔다. 이 때문에 한강 하류지역 어느 곳 보다도 빨리 창전동 일대가 취락지구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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